백제역사유적지구는 678영 백제사 중 후기 185년의 도읍지 유산으로 2015년 7월 세계유산으로 등재가 되었다. 현재의 공주시인 웅진, 현재의 부여군인 사비의 유산으로 충청남도 공주시, 부여군, 전라북도 익산시에 분포한다. 부여 사비성 관련 유산인 부여 관북리 유적, 부소산성, 정림사지, 나성 등이 사비시대의 유적이다. 이 유적들은 백제가 중국, 일본과의 교류를 통해 건축, 불교, 예술, 도시계획 원리 등 문화 양식을 받아들여 백제만의 고유한 방식으로 구현해 냈음을 중명한다.
부여 관북리 유적에는 백제의 왕궁터와 고려, 조선시대의 관아가 있던 곳으로 추정되는 지역이다. 왕궁터는 부여 부소산성 남쪽 기슭에 위치하며 부여 시가지가 한눈에 들어오는 입지조건으로 보아 백제 왕궁지로 적합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왕궁터에는 건물터, 도로, 하수구, 연못, 석축시설 등의 유구가 확인 되었고 백제의 어정인 팔각정이 있다. 연못은 직사각형의 활석으로 쌓았으며 연꽃무늬 수막새, 토기, 금동제 귀고리, 등잔, 개원통보, 대바구니, 목간 등의 다양한 유물이 대량 출토되었다. 배수로가 설치된 도로망이 발견되었다.
부소산성은 사비성이라고도 하며 부소산의 산정을 중심으로 해서 1차적으로 테뫼식 산성을 축조하고 다시 그 주위를 포곡식으로 약 1.5km에 걸쳐서 축조하였다. 현재 반월루가 있는 곳에서 산정을 두른 약 600m의 테뫼식 산성 안에는영일루와 군창지 그 밖의 건물터 등이 는데 이곳에서는 탄화미가 많이 나오고 있는가 하면 토축 성벽도 완연히 남아있다. 부소산성은 성왕 16년인 538년 웅진에서 이곳으로 천도한 때를 전후하여 축조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정림사지는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에 있는 백제시대의 절터이다. 백제 성왕이 538년 봄 지금의 부여인 사비성으로 도읍을 옮기면서 도성 안을 중앙, 동, 서, 남, 북 등 5부로 구획하고 그 안에 왕궁, 관청, 사찰 등을 건립할 때 나성으로 에워싸인 사비도성의 중심지에 정림사가 세워졌다. 부여 정림사지 오층석탑은 백제인의 감성이 고스란히 담겨진 석탑이지만 소정방이 백제를 멸한 기념으로 새긴 글로 인해 평제탑으로 불렀다가 고려 현종 19년에 정림사로 불리웠음을 알게 되어 정림사와 정림사지 오층석탑으로 불리게 되었다.
능산리고분군은 백제의 마지막 도읍지였던 부여로 들어가는 길가에 자리한 무덤 군이다. 현재 총7기의 고분이 이곳에 있는데 부여 인근에 위치한 것으로 보아 백제 왕실의 무덤으로 추정하고 있다. 1호분에서 고구려 무덤에서 볼 수 있었던 사신도가 무덤 내부에 그려져 있는 것을 확인하였고 무령왕릉은 벽돌로 쌓아 만든 전축분 형태로 중국 남조의 영향을 받아 만든 것이다. 능산리의 무덤 형태는 돌방무덤으로 내부에 방을 만들고 주변을 흙이나 돌 등을 이용해 봉토한 형태이다.
나성은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염창리에 있는 백제 시대의 성곽으로 둘레 약 84km로 백제의 수도인 사비를 보호하기 위한 외곽 방어 시설이며 사방에 문지가 있다. 축성 연대는 성왕대인 523~554년 을 전후한 시기로 보고 있다. 나성 안에는 백제시대 왕궁을 비롯해서 관아, 민가, 사찰, 상가 및 수도수비를 위한 방위시설 등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며 오부제도를 두고 다스렸다. 전체적인 구조상 남쪽은 금강이 흐르고 있고 또 수로도 파 놓아서 이 나성은 자연적인 이중구조로 되어 있다. 나성은 청산성, 청마산성과 함께 왕도의 보호를 위한 외곽 방어시설로 중요한 성이었다.